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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마가 죽는 이야기



"에퉷퉷!"

 거친 모래바람에 입 안에 자잘한 모래들이 쉼없이 들어온다. 오만상을 찌푸린 유우마는 몇 번이고 입 안에 들어온 모래를 뱉었지만, 뱉은 모래보다 배는 더 많은 양의 모래만 더 먹게 되어서 결국엔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천을 좀 더 꼼꼼하게 둘러맸다. 뜨거운 대낮에 부는 모래바람이 굉장히 성가셨지만 유우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유우마는 여행의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누메론 코드의 힘은 어마어마하게 완벽했다. 아니, 완벽할 터였다. 그 능력은 매우 강력했지만 이후로 유우마는 어느샌가 인간세계에 위화감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말로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거슬림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유우마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누메론 코드를 사용한 것은 아스트랄. 하지만 아스트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먼 옛날 돈 사우전드를 봉인하기 위한 싸움에서 아스트랄로부터 츠쿠모 유우마 자신이 분리되었다. 그것도 카오스를 품은 채. 그리고 유우마는 깨달았다. 이 세계의 위화감을 없애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한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직감 같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고하면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유우마는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내용의 편지를 거실에 두고서 몰래 나왔었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일종의 목적지들에 한 번씩 발을 들이밀었다. 기분나쁜 위화감들이 피어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카오스를 일부 심어둠으로 인해 세계를 둘러싼 위화감이 줄어드는 것이 피부에 확 와닿을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절망스러웠다. 당연하게도 유우마는 더 오래 살고 싶었다. 아직 유우마는 어렸고, 친구들이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게 된 가족도 있었으며, 차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린다는 선택을 하면 이 세계에 영향력을 뻗으려드는 이 위화감이 세상에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절대로 좋은 것을 가져다줄 리 없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나 하나가 이기심을 부려서 모두를 잃을 바에야 나 하나만 희생해서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객관적이면서 합리적으로도 이것이 옳은 답안이었다.

 유우마는 여행의 종착점, 자신의 시체를 묻을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살여행을 떠난지도 몇 개월째. 가족들과 친구들이 자신을 찾고 있을거란 사실은 천하의 유우마라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걸음은 항상 서둘러서 걸었고, 잠깐이라도 어디에 머무르게 될땐 되도록이면 흔적을 지우고 또 지우면서 다녔다. 그렇게 몇 개월동안 많은 것들을 신경쓰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히 피곤할텐데도 불구하고 유우마는 꿋꿋하게 버티고 또 버텼다.

 얇은 샌들에 끼운 발 사이사이로 모래가 쉼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그늘 밑에 숨어드는 것 같구나. 답지 않게 감성적인 생각을 하는 유우마였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차분하게 변한다던데 어째서 자신은 점점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가 조금은 궁금했다. 계속되는 모래의 간질거림에 발가락을 몇 번 꼼지락대고서 유우마는 발걸음을 좀 더 서둘렀다.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이었다.

 해가 모두 지기 전에 도착한 덕에 유우마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얼마 안남은 물을 모조리 마셨다. 최후의 만찬 치고는 좀 초라한 게 아닐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더 곱다던데. 잊혀진 유적같이 여기저기 무너진 벽이 즐비한 곳에서 실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던 유우마는 마지막으로 제 안에 남아있는 카오스를 품고 죽을 준비를 시작했다. 위화감이 가장 강하게 솟아나는 근원지 위로 발걸음을 옮긴 다음, 떨리는 손으로 날이 바짝 서있는 군용 나이프를 쥐었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할 수 있어. 캇토빙 하면 되잖아. 이런 때까지 캇토빙을 붙이는 건 좀 어색할지 몰라도. 유우마가 근원지 바로 위에 서있는 탓에 흘러나오던 위화감이 점점 에너지를 갖고 위협적으로 뿜어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없다. 이곳에 마지막 카오스를 심어둬야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래, 머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훌쩍, 훌쩍, 흑...흐윽."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해서 등 뒤로 다가온 죽음의 무게가 무겁지 않은것은 또 아니었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겪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기에 죽음은 무서운 것이다. 특히 아직 13살 밖에 안된 소년에겐 더더욱 그 무게가 한없이 무겁고 또 두려웠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유우마는 자리에서 훌쩍이며 울었다. 무서움에 턱이 저절로 떨려온다. 모래가 섞여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조금 들이쉰 유우마는 나이프를 고쳐쥐고서 천천히 심장 높이로 칼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딘가에서 헬기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사막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오래 있던 나머지 기어이 더위를 먹었나? 하고 유우마가 골똘히 생각했다. 생각에 잠겨 의도치않게 머뭇대는 사이, 아직 해가 떠있는 하늘에서 헬기가 신기루처럼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우마는 저 비행체가 부디 자기가 아는 그 비행체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다. 

 짧고도 강렬한 바람은 야속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낯익은 형태, 낯익은 색깔의 헬기 몇 대가 근처의 모래바닥에 착륙하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면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멀리서 혼자 어정쩡하게 서있는 유우마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냐, 유우마."

 "......환각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유우마에게로 뻗어오는 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환상이 아닌 진짜라는 걸 깨달은 유우마가 두 세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두들......."

 과거 함께 듀얼로 울고 웃었던 동료들이 눈 앞에 있었다.

 "......."

 조금씩 올라오는 감정의 탓일까, 쉴새없이 눈을 괴롭히는 모래바람의 탓일까. 유우마는 눈을 살짝 찌푸리고서 모두를 둘러보았다. 유우마의 손에 들린 나이프 때문인지 다들 긴장한 얼굴이었다.

 "유우마, 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내려놓는게 어떨까."

"샤크......."

 카이토의 약간 뒤에 서있던 료가의 회유에 유우마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바람이 멈춘 사이에 카이토가 입을 열었다.

 "넌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이 현상과 너는 관련이 있는 것인가?"

 대답하자니 입 안이 껄끄러워진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찌를까. 유우마는 몇 번인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야기하면 분명 이들은 믿어주리라. 하지만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내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어찌 말해야 좋을까. 짧지 않은 고민 끝에 유우마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는거야. 이건,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인거야. 누구도 막아선 안되고, 막을 수 없어."

 "그렇다고 네 녀석이 자살하려는 걸 빤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 이거냐?"

 "나는,"

 준비를 미리 해두지 않아 자꾸만 치미는 감정에 목이 메여온다. 유우마는 애써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아스트랄과의 듀얼이 끝나고 나서부터 나는 꽤 오랫동안 세계를 좀먹기 시작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어. 그리고 세계에 퍼져버린 이 위화감은 내가 품고 있는 카오스를 심어놔야지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사라질거야. 위화감이 더 늘어난 순간에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어. 이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아스트랄에게서 떨어져 나옴으로 인해 아스트랄은 완전한 하나의 존재가 되지 못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 곳만 막아두면, 그러면 완전히 끝나. 그러니까."

 돌아가. 유우마는 단호하게 마지막 말을 맺었다. 금방이라도 풀릴 것만 같은 손에 애써 힘을 주며 다시 나이프를 제 심장에 겨누었다. 트론가도, 전(前) 칠황들도, 넘버즈 클럽 친구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유우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토와 료가는 유우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마, 둘 다."

 제발. 마지막에 가서는 서글픈 애원조였다. 둘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유우마는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몇 번 움직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근원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유우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위화감이 세계에 끼칠 악영향을 나는 피부로 선명하게 느꼈어. 사실은 모른척 하고 싶었지만, 그 알량한 이기심으로 인해 기껏 평화로워진 일상이 한순간에 재앙으로 뒤덮이는 건 보고싶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그 순간이었다.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유우마의 팔이 순식간에 당겨진 것은.

 "유우마!!"

 "유우마!"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유우마는 제 가슴에 박은 칼을 뽑아냈다. 심장이 찔린 것은 아니지만 심장과 가까운 부근에 칼을 박아넣었기 때문에 유우마는 금방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허물어지는 육체를 가장 가까이 있던 카이토와 료가가 받아냈다.

 "빨리 가서 지혈제를......!"

 "아니, 그만둬, 하지마."

 카이토의 다급한 외침을 유우마가 만류했다. 언뜻 보기에 어두워 보이는 빛깔의 피가 울컥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장 자신이 죽어감에도 유우마는 더없이 곧은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짧게 말할게. 너희들은, 너희들은 부디 살아줬으면 해."

 내가 사랑했던 일상을,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니 너희들이 대신 이어줬으면 좋겠어. 내 몫까지. 그러니 부디 살아줘. 살아서 모두 행복했으면 해. 한 손은 카이토의 손을, 한 손은 료가의 손을 붙잡고서 유우마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울컥 튄 피로 인해 유우마의 손이 지저분했지만 둘 중 어느 누구도 그 손을 내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힘주어서 꽉 잡았다. 가슴에 열린 구멍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유우마의 피가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가장 거대한 위화감이 제 피가 닿음과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 유우마가 더없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됐어. 이제 됐어. 작아져가는 속삭임에 유우마는 제 마지막 숨을 실어보냈다. 조용히 감은 눈가에 겨우 맺힌 이슬이 햇빛에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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