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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터→유마←샤크]웅앵뇽,,초키포키,,






벡터의 경우




 침묵에 수년간 절여둔 것 같은 어두운 방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기름을 먹여둔 경첩은 불쾌한 잡음 하나 없이 부드럽게 미끄러졌고, 밝은 빛 사이로 누군가가 들어오더니 이내 방은 빛을 잡아먹고 다시 한 번 어둠을 가득 채웠다. 방안이 지독히도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들어온 이는 공간이 꽤나 익숙한지 몇 번의 규칙적인 발소리와 함께 제가 도착하려던 곳에 당도했다. 가만히 서 있던 이는 이윽고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그 차가움에 환히 웃음 짓던 남자가 그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유우마군."

 어딘가 들떠있는 목소리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듯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대화라고 해봤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 사람분의 목소리밖에 없었지만, 말하는 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늘 하루도 굉장한 하루였어. 도르베가 메라그, 아니 여기선 리오라고 해야겠지? 어쨌든 그녀와 친하게 지내니까 다른 남자들이 그녀와 말을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더라. 덕분에 낫슈, 아니 료가가 놈팡이들이 제 여동생에게 시끄럽게 들러붙으려 한다고 신경이 바짝 섰더라. 아, 그리고 기억해? 반장이랑 토쿠노스케가……."

 부모님에게 하루 일과를 조잘조잘 신나게 얘기하는 어린 유치원생처럼, 혹은 자기 전에 침대 위에 누워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대답 한 자락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갔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즐거운 이야기가 돌연 뚝 끊겼다. 할 말을 고르는 듯 잠깐의 침묵 뒤에, 한 톤 다운된 목소리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너를 찾고 있어, 유우마군. 너와의 듀얼로 이어져 왔던 인연들이, 너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어."

 손끝을 지나는 감촉은 차갑고 매끄러웠으며, 어떤 부분은 조금 축축하기까지 했다. 아까와는 다른 차가움과 매끄러움이지만, 그는 더없이 소중하다는 듯 애정 어린 손길을 쉬이 멈추지 않았다.

 "슬슬 그들도 포기해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네가 남긴 인연들이 너무 질기고 또 튼튼하단 말이지."

 얄밉게도 말이야. 숨을 잠시 들이켬과 동시에, 비틀린 미소를 짓던 그는,

 "그럼 뭐해. 넌 이곳에서 나와 영원히 함께할 건데."

 차갑고 매끈한 부분에 깊고 진한 입맞춤을 남기며,

 "또 보자, 유우마군."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을 나갔다.
 문이 열리며 다시 방 안에 침입을 시도하던 빛은, 생기 하나 없이 유리관 안에 박제되어있던 츠쿠모 유우마를 잠깐 스치고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료가의 경우




 카미시료 료가가 제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고 있다는 진실은 교내에서 유명했다. 리오가 도르베와 친하게 지낸다고 주제도 모르고 들이대는 놈들 때문에 료가의 신경줄은 이곳저곳 갉아 먹힌 상태였다. 일일이 노려보는 것도 지친 그는, 도르베와 리오가 같이 있을 때 저도 같이 붙어있기로 했다. 어쩔 줄 몰라서 애매하게 웃는 도르베나, 이게 뭐냐 라고 묻는 듯 짜게 식은 리오의 시선에도 꿋꿋하게 리오와 붙어있던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샤크."

 그녀의 이름은 분명 '미즈키 코토리'였던가. 유우마의 곁에 항시 떨어지지 않던 소꿉친구. 곁에는 곁다리처럼 유우마의 친구들이 우르르 붙어 있었다. 새가 지저귀듯 리오와 안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던 료가는 눈길을 돌려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서있는 벡터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유우마군은 아직……."

 "네……."

 츠쿠모 유우마. 그의 이름이 나오면 분위기는 이렇게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몇 달 전, 추락 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실종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병실에서 사라진 걸 처음으로 발견한 이는 벡터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유우마의 실종을 알리는 소리에 다들 급히 병원에 모였었더란다. 먼저 도착해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저 소꿉친구는 울고 있었고, 리오가 그녀를 달래러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벡터의 손에는 연락하느라 쥐고 있었던 D-게이저와 이상하게 생긴 꽃이 피어난 가지를 심은 화분이 들려있었다. 벡터의 말로는 며칠 전에 화병에 꽃아뒀던 꽃을 버리고 새로운 꽃으로 갈아주려고 왔는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이미 침대가 새하얗게 비어있었단다. 뼈가 이곳저곳 부러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들여다 본 병실에는 들춰진 이불과 바람을 맞으며 외로이 시들어가는 갯버들이 있었다. 새로운 꽃을 두면 좀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벡터는 제 손에 들고 있던 화분을 꼭 쥐었다. 작고 빨간 열매같이 생긴 꽃은 츠쿠모 유우마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었다.

 "그 꽃, 굴거리나무의 꽃이로군요."

 "아, 응."

 어느 새 돌아온 리오가 벡터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쾌차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유우마군하고 잘 어울릴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덧붙인 벡터는 고개를 떨궜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할테니 너희들은 이만 집에 돌아가렴.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하는 아카리의 말에 그렇게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 것이 약 3주 전의 일이었다.

 "넌 뭘 그렇게 웃고 있어?"

 료가의 지적에 벡터가 아, 하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유우마군이 돌아와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걱정해준 걸 알면, 역시 기뻐해주려나 하는 마음에 그만……."

 다시금 가라앉는 분위기에 벡터가 애매하게 다시 웃으며 그럼 나는 이만 먼저 돌아갈게, 라며 몸을 돌렸다.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그들을 보며, 리오가 코토리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전에는 벡터와 같이 붙어다녔던 것 같은데, 요새는 그렇지 않은가봐요?"

 "아, 예. 아무래도 그때 일이 자기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선지 저희와 같이 있는 걸 좀 피하는 것도 같고……."

 그 말을 들으며 멀어져가는 벡터의 등을, 료가는 주욱 바라보았다. 정말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한 것이 남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직감은 그게 아니라며 료가의 신경을 살살 긁는 것 같았다. 료가는 묘한 불쾌감을 안고, 리오가 작별인사를 하자 금방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
여담

갯버들의 꽃말: 친절, 자유, 포근한 사랑
굴거리나무의 꽃말: 내 사랑 나의 품에

이후에 여차저차해서 벡터의 집에 들어가게 된 료가가 유우마의 시신이 박제된 유리관을 발견하는 것까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몰라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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